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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오이] 구세주 02

소금빛 2016. 1. 23. 02:19

 

우시지마 X 오이카와

*패러디 물(Spin-off)

 정발본 외의 캐릭터 (이름만)등장 주의

 

 

 

 

球世主

구세주

 

 

 

 

 

02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오이카와 토오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고교 3학년 최후의 시합이었던 봄고 미야기현 대표 결승전에서였다. 경기 결과는 시라토리자와의 패배였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팀이 아니라 우시지마 개인의 패배이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뒤 느지막하게 경기장을 나서는 우시지마의 앞을 오이카와가 막아섰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 자체는 전혀 웃고 있지 않으면서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향해 미소 지었다. -역시 재수 없는 우시와카쨩. 졌으면서 조금도 좌절한 표정은 안 보여주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시지마가 입을 열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편이 좋을 것 같군.”

 

  평소 무심하게 오이카와의 화를 돋우던 것에 비하면 전혀 문맥을 읽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와 동시에 우시지마는 그의 이마 위로 드러난 상처를 가리켰다. 종전까지 웃는 이라도 하고 있던 오이카와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잠깐, 우시지마.”

 

  반쯤 경멸을 담아 우시와카라고 멋대로 부르던 호칭 대신 제대로 된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생소했다. 인터하이 결승전 경기 후 혐오스러운 것을 만지듯 억지로 악수를 청하던 때와 달리 오이카와가 홀린 듯 우시지마의 손을 잡아챘다. 오이카와는, 깜짝 놀랄 만큼 차가웠다. 우시와카가 방금 전까지 연이은 경기로 몸에 열이 올랐다고 해도 그의 손은 지나치게 서늘했다.

 

역시 아무 것도 아냐.”

 

  한참을 입을 달싹이던 오이카와는 다시금 꾹 입술을 다물었다. 다만 붙잡았던 손으로 말없이 우시지마의 어깨 위를 가볍게 털어냈다. 털어냈다는 말에도 어폐가 있는 것이 실제로 그는 우시지마의 어깨에 손끝만큼도 닿지 않았다. 그 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련 없이 돌아섰다. 말붙일 틈조차 주지 않고 등을 돌려 사라진 오이카와였기에 그에 대한 의문 또한 우시지마의 안에 오래도록 머무르지 않았다.

 

 

*

 

 

  고교 졸업 후 우시지마는 스포츠 특기생으로 도쿄 소재의 체육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안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애초부터 어딘가 현실감이 떨어지는 집안에서 우시지마의 존재는 외떨어져 있었기에 가정에서 벗어나 혼자 사는 새내기 대학생이라면 의례히 느낄만한 해방감이라는 것이 없었다.

 

 

  사실 우시지마의 부친 쪽 집안은 우수한 제령사[각주:1]를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했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토속신앙이 가지는 파급력이 컸고 그것은 우츠이[각주:2]의 집안이 정재계의 뒤에서 계속 돈을 벌어들일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했다'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가 거의 없어진 지금에야 과거의 명성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우시지마 또한 눈이 없는 사람중의 하나였다. 직계의 직계 혈통임에도 그는 제 둔한 천성을 닮은 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집착하는 것은 배구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 우시지마가 입고 먹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존재에서 오고 있었으므로 부정의 여지조차 없었다. 다만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보려고 하지 않으니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아주 어렸을 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챈 아버지가 외조모의 곁으로 보낸 이후로 그는 단 한 번도 부친의 본가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수긍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우시지마는 도쿄 근교의 실업팀에 계약 사원으로 스카우트 되었다. 프로리그가 아니라 실업팀인 만큼 수억대의 연봉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제 한 몸 건사할 만큼은 벌 수 있었다.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이룬 우시지마는 외조모의 죽음을 계기로 완전히 고향에 발길을 끊었다. 수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고향에서의 기억은 점차 잊혀져갔다.

 

  이후로도 고교시절 올해의 유스 3인이라고 잡지에 소개 된 것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만큼 시간이 흘렀다. 세상은 넓었고 초 고교급 에이스라 불렸던 우시지마도 고등학교를 벗어나서는 그저 여느 실업팀에서 뛰고 있는 수많은 선수 중의 하나였다. 물론 우시지마 자체는 여전히 우수한 선수였다. 그렇다고 해서 텐도가 몇번이고 참고인으로 불러달라고 당부했던 정렬대륙[각주:3]의 조명을 받을 만큼의 스타플레이어가 된 것 또한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도 우시지마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지역이 달라도 한번쯤은 대학 리그에서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오이카와를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리그에 들어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코트 위에서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따금 현재 팀의 세터가 올린 공을 보면서 중고교시절 동안 반대편 코트에서 숱하게 마주했던 오이카와 그의 토스를 떠올리곤 했다. 그가 그동안 우시지마에게 보인 적의나 투쟁심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쉽게 배구를 포기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았지만 어차피 타인이 타인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이었다.

 

  우시와카는 무의식적으로 가졌던 그에 대한 기대가 배신당했다는 것을 고교 졸업 후 몇 년이 지나서야 문득 깨달았다.

 

 

  다시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유스 대표로서 세계 대회에 두어 번 나간 것이 전부였던 우시지마는 우연히 국가대표 감독의 눈에 띄어 아시아 선수권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것을 계기로 2부 리그에서 1부 실업리그로 스카우트 되었고 근 3년 만에 다시 미야기현 근교로 돌아오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부친 쪽 본가에서 연락이 왔다. 우시지마의 부친 우츠이 타카시의 상이 이유였다. 친조모가 살아있긴 했으나 아들의 장례를 그 어미가 치룰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었던 간에 서면상으로 아들은 우시지마 와카토시 하나였다. 그들이 그런 세간의 도리를 이유로 내세우면 우시지마는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로 없는 셈 치고 살았던 세월이 길었던 만큼, 우시지마도 그들이 굳이 저들 손으로 쫓은 저를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

 

 

  소설보다 기구한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냐고 생각했던 일보다 배는 더 거짓말 같은 일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애초에 비현실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왠만한 일들에 크게 반응하지 않게 된 우시지마 조차도 그 불예측성에 대해 깊이 동감했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우츠이 타카시 즉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의 장례식장에 있었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오이카와와 우시지마는 서로의 부친상을 조문을 올 정도로 각별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중고교 시절동안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에게 조금이라도 호의가 섞인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당시의 우시지마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이카와가 그에게 느끼는 감정은 거의 증오에 가까웠다. 그리고 우시지마가 기억하는 것이 틀리지 않다면 오이카와는 학창시절 내내 배구를 했다. 오이카와의 배구 인생 어디에도 제령사와 관련된 일은 없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있었다. 마치 응당 그래야 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듯이 당연한 얼굴을 하고서.

 

 

 

 

 

 

 

-

 

시바타 준의 구세주가 모티프

 

 

 

  1. 제령은 일본어에만 존재하는 단어로 한국어의 퇴마에 해당 [본문으로]
  2. 우츠이 타카시, 우시지마의 부친 [본문으로]
  3. 정열대륙. 일종의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으로 기대의 신인, 유명한 연예인등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다큐형식으로 다룬다. [본문으로]